인간의 길 - '진보의 미래'를 읽고!

[참여하는 민주주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특정한 현상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또는 정리된 생각에 준거해 인간과 현상, 실존의 문제를 정리하고 파악하려는 정신 작용을 두고 우리는 이를 이념,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관념의 기원이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학문의 명칭으로 처음 쓰인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과학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의 시대에 와서 관념 그 자체가 아니라 생산양식 등 사회의 상하부 구조 사이의 관계성에 의해 파악되는 관념 또는 의식의 제형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념이란 논리의 완결성을 필요로 한다. 인간, 자연, 사회 등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일정한 원리, 패턴, 모델이 존재한다는 추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현상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 정합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이념이나 사상은 하나의 굴레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냉전이 사라진 후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주장되어졌다. 개념적으로 정리된 이념이나 정치사상에 묶이지 말고 부분적 역할의 극대화로 인간 실생활 여건의 향상을 목표로 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이념, 정치사상의 반영으로 과연 보편적 인류의 삶이 향상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 주장은 무엇보다 인간의 복수성을 중시한 듯, 아마도 기계적 관점을 배격하고 인간의 상대적 자율성을 보다 넓게 인정하자는 주장일 것이다. 중도의 시대, 구조주의적 시대의 도래라고나 할까 인구수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인류와 인류의 존재로 인해 더욱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의 문제는 이제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으로는 일관된 해석이 불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류가 살아가자면 끊임없는 생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이 아닌 공존하기 위한 생산과 분배의 시스템, 인간의 복수성에 기인하는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인류 공동체가 규범적으로 합의하는 일은 따라서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정신 활동, 결론을 얻으려는 관념의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사상이라고 부른다. 생각이 정리되어 이념이 되고 이념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하나의 사상으로 탄생하게 된 것들 중, 우리 귀에 익은 정치사상 또한 무수히 많다. 민주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민족주의·자유주의·분리주의·사회민주주의·수정자본주의·신자유주의·아나키즘·파시즘... 때론 시대적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보편적 목표는 무엇인지,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 등으로 인류를 이끌어온 이 정치사상들은 하나의 논리적 완결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간 실존의 문제나 복수성에 기인한 갈등의 해결을 위해 많은 사상들은 나름대로의 해법들을 보여 주었고 인류는 이른바 이념의 시대, 사상의 시대를 통해 발전해 왔다. 어떤 하나가 한계에 다다르면 또 다른 하나를 해법으로 내세우거나 때론 대립과 경쟁을 통해 발전해온 것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예외다. 어떤 시대에도 사람이 근본이라는 개념은 실체적 결과와 관련 없이 사상의 근본을 이루어왔고, 모든 권력의 실체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민주주의 이념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상에서도 배척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와는 다른 측면이다. 인류는 언제나 진보해 왔고, 반복을 통해 인류의 실존을 지켜왔다.


합치고 묶어내 같음을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이 대개 그렇다. 규모를 통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거나 규범을 통해 공동체 내의 갈등 해소를 담보하려는 부분에서는 통합이 효율적이다. 특히 경제·사회적 문제·사법 정의 등이 그렇다. 인류 보편의 문제인 생존이나, 사회 갈등에 대한 해법에 공동의 합의가 마련된 경우 우리는 통합을 통해 개인의 삶의 질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다.

나누고 풀어내 다름을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전통·문화·민족·개인의 정체성 등이다. 또한 인류 공동체가 규범적으로 합의하지 못한 부분들 또한 나누고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다. 인간은 복수로 존재하고, 다수의 국가, 다수의 민족이라는 형태로 혼재해 있다. 공동체들마다 갈등의 문제가 현존하는 이유는 바로 복수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바로 이 복수성은 개인 실존의 문제와 뗄 수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므로 이를 하나로 묶어 보편화하는 일은 인간을 완벽하게 도구화하기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인류사에 나타났던 문화권들은 언제나 경쟁적이었다. 하나의 국가나 민족은 물론 다수의 민족과 국가일지라도 하나의 공동체적 운명에 놓이거나 문화적 공감대를 통해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면 또 다른 공동체적 운명, 문화권에 대해 경쟁을 해왔고, 때론 배타적이었다. 인류의 틀에서 보면 개인은 공동체적 운명이지만, 문화권 측면으로만 나누어도 경쟁적이고 때론 배타적 관계에 놓여 왔던 것이다.


묶어야 할 부분들은 대개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다. 나뉘어져야 할 문제들은 대개 정치적, 문화적인 것들이다. 그뿐인가? 타인에 대해 우월성을 느끼려고 하듯, 개인은 물론 국가나 민족들이란 대개 경제적 우위, 힘의 강약, 문화적 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야성적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해결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나누고 묶고, 개별적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함께 문제를 해결해온 역사가 바로 인류의 역사였던 것이라면 진보와 보수 또한 공존해온 역사일 것이다.


인간은 노동 또는 작업을 통해 생존을 영위하는 존재다. 대개의 국가들, 공동체들은 나름의 법률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 타인으로부터의 위협 등으로부터 공동체적 안전을 보장받는 일들을 우리는 사회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일종의 규범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생존의 의미를 찾는 존재다. 목숨이 붙어있는 존재로 인간은 언제나 타인과 상호 연관성을 갖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 대해 실존적 고민을 하는 존재들이기에 때론 후천적으로나마 국가나 공동체를 선택하곤 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을 결정짓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이렇게 자유 의지의 문제들은 정치적인 것이다. 일종의 규범적 합의가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기도 하고 존재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는 갈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정치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정치적 존재다. 인간은 또한 사회적 동물로 만족하는 개체가 아니다. 언제나 정치적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모두 다르지만 포괄적으로는 모두 같은 운명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정치는 인류·민족·국가·가정·직장 등 공동체 내에 함께 존재하는, 매우 다른 존재들로서의 인간 개개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다. 당연히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행위인 것이고,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찾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정치적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인간에게는 적대적 관계에 놓여진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인 많은 것들 중 과연 얼마만큼을 사회적인 위치로 바꾸어냈는가? 그 양과 질에 따라 공동체의 결속은 가름되어질 것이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갈등을 비례할 것이다.

바라건대 이념의 굴레에, 사상의 굴레에, 성향의 굴레에 자신을 함부로 규정하지 말아야겠다! 타인에 대해서도 물론이다. 이게 정치의 기본일 것 같다. 이게 진정한 진보다!


진보는 규정하지 않는다. 정치가 깨끗한 선의 세계가 아니라 진흙탕에 버무려진 이웃과 어떻게든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작업이라면, 진보는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과 따뜻한 애정으로부터 유래하는 유연함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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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6:38 2009/12/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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